뜀의 세상보기/07~08EGYPT

뒤죽박죽 이집트 여행 5(왜건 리)

"뜀" & "세인" 2008. 1. 17. 00:21

뒤죽박죽 이집트 여행  5(왜건 리)

 

 2007.12.29 19:50

 

베를린 호텔에 맡겨두었던 짐을 찾아서 룩소르를 가기위해서 기차역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다시 카이로로 돌아왔을때 우리의 거주지가 되었던 Sadat역..

 

 

 

 교통카드만 없을뿐 지하철 표도 출입구도 완전히 우리나라와 똑같은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어디서 만든걸까? 궁금해지네...우리나라가 이런 시스템을 많이 수출한다고 하던데...

 

 

 왜건 리를 타기 위해서 기자역에 도착했다.

 

 

 

 된장맞을,,,이 곳이 왜건 리를 타기위한 출입구다. 벤치의자 하나 딱 막아놓고 티켓 검사를 한다. 진정 어처구니없었지만 어쩔수없지 않은가...돌아올때 알았지만 기차역 입구는 다른곳에 있었지만 역시나 거지같았다...거지같다는 표현 계속 해도되려나...

 

 

 자,,,이런 분위기에서 한 번 찍고 가야지하는 심정으로...

 

 

 

 

2007.12.29 20:40

 

왜건 리 내부 모습이다. 밖에서 봤을때는 거지같았는데 내부는 상당히 깨끗했고 예전에 탔던 쿠셋보다 훨씬 좋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출발전부터 힘들어하던 내가 드디어 미쳤나보다...기차에서 나오는 석식을 먹고 곧바로 취침했다는 그 사람 뜀도령 최 윤성이다.

 

 

간이세면대

 

 출입구

 

 기차내 복도...참한 아가씨가 서있었다면 딱일텐데...

 

 

요놈...아무생각없이 시켰다가 돈 주고 사먹었다는...모두들 정신이 혼미했던게야...

 

 

적당히 딱 적당히 배고프면 먹을만한 저녁식사.

 

열차의 의자를 승무원의 도움을 받아서 펴면 이렇게 침대로 변신한다.

 

 

 요건 아침식사다. 티켓은 아스완까지였지만 룩소르에서 내려달라고 이야기했는데 승무원이 생깠다. 그래서 우린 결국 에스나에서 내릴수밖에 없었다.

 

 

 #왜건 리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로 유명한 오리엔트급행 등, 호화 객차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왜건 리 회사는 벨기에 사람인 조르쥬 나헤르매커스가 설립했다. 조르쥬는 미국 여행 때 철도업계의 자극을 받아 유럽을 연결하는 국제열차를 만들 결심을 굳혔다. 이때의 조르쥬는 27세였다. 그는 1883년 오리엔트 급행의 객차를 제조한 것을 시초로 전 세계 호화 열차의 차량을 제조했고 유럽 여러 나라의 왕후 귀족이나 정부 요인이 이용하는 열차로 되어 그 명성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왜건 리의 호화 객차는 유럽이나 아시아, 중동의 주요 노선을 운행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왜건 리 열차는 병사 수송용으로 공출된다. 또한 러시아 혁명 후인 1918년에는 소련 정부에 의해 161량의 침대차가 국유화되어 버리는 고난도 있었다.

이를 극복하고, 1930년대가 되어서는 1000량이나 되는 왜건 리의 객차가 유럽 대륙을 종횡무진 주행하는 식으로 되었다. 더욱이 왜건 리 회사의 여행 대리점도 전 유럽 규모로 지점을 늘렸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호텔업계나 여행업계 등의 트래블 비즈니스에도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본사를 파리에 두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기업의 하나로 되어있다.

한편 이집트에서는 1896년에 일찌감치 카이로~룩소르의 급행 Le Cairo Luxor Express로 왜건 리 회사의 차량이 운행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00년 이상에 걸쳐서 왜건 리 차량은 나일강을 북으로 남으로 운행하며 여행객을 룩소르나 아스완으로 이동시켜 주고 있다.

 

펌 출처:[세계를 간다]이집트 편

 

*어쨌건 더블60달러였고 싱글은 80달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