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여행, 미얀마 39 (쉐다곤 파야 4)
2015.7.18.(토)~25.(토)
2015.7.24.(금)
# 한 바퀴를 모두 돌고
잠깐 휴식을 취했다. 반바지 위에 입은 론지때문에 무척 더위를 느꼈고 땀도 많이 났기 때문이다. 가다보면 쉬어갈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여행의 마무리를 바쁨속에서도 여유를 찾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월요일엔 우리 둘째 아가가 태어난 날이다. 이곳에서도 역시 세정을 했는데 이제 세 살인지라 금방 끝낼수 있었다
다시한번 천천히 중앙탑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다시 올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고 있었고 올해중에 부모님과의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시점이기도 해서 이번 여행이 괜찮았다면 이곳으로 모시고 오려는 마음도 있었는데 모든면을 고려하면 쉽지않은 여행길이 될듯해서 여행지에서 지워지고 있었는데 쉐다곤 파야를 본후에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쉐다곤이 본격적으로 관심을 받고 역사에 언급되는 것은 14세기 중엽, 바고 왕국이 남부 버마를 장악하고부터였다. 쉐다곤에서는 바고 왕국의 딤마제디 왕이 1485년에 세운 석문이 남아있다. 석문에 따르면 아노라타 왕이 11세기에 수도 바간에서 다곤을 방문했고, 바고의 왕 빈냐우도 그의 통치기간에 이 탑을 18m높이로 재건축했다. 그리고 신소부여왕의 조카이자 전임 왕인 빈야쟌이 탑을 90m 높이로 올렸고, 신소부여왕이 사원 주변을 보수하고 자신의 몸무게만큼(40kg)의 금을 보시해 그것으로 금잎을 만들어 탑에 입혔다. 그 뒤 그녀의 사위 담마제디 왕이 자신의 몸무게만큼의 금을 네 차례 보시해 탑에 입혔다. 황금불탑의 나라 미얀마에서 읽은 내용인데 재밌는게 자신의 몸무게만큼 금을 보시했다는건데 몸무게가 많이 나갔으면 더욱 좋을뻔했네.
쉐다곤 파야에 왔음을 확인하노라
쉐다곤 동쪽 계단에는 버마어, 팔리어, 몬어로 쉐다곤 건설에 관한 전설적 이야기와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데 17세기와 18세기에는 강진이 일어났는데 특히 1768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탑이 전부 붕괴되었고 이에 세 번째 버마 왕국인 콘바웅 왕조의 신뷰신왕이 탑을 재건축해 오늘날의 높이로 만들었다. 신뷰신 왕의 아들이면서 다음 왕인 신구는 1779년에 23톤짜리 청동 종을 주조해 사원에 헌납했는데 쉐다곤의 북서쪽에 있는 마하간둘라 종이 그것인데 전 편에 사진을 찍었는데 그냥 설명없이 지나쳤네...
정말 보고 또 보고였다
찍고 또 찍고
동자승이라고 하기엔 나이가 좀더 있는 스님도 지나가네...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티 부분을 자세히 보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미션임파서블이란 영화가 이곳에서 만들어지면 재밌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톰아찌가 어떻게 이곳에 있는 다이아몬드를 가져갈까하는 생각말이다. 물론 진짜 일어나서는 안될일이지만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괜찮으리라.
이곳을 떠나기가 아쉬워서였을까? 계속 바라보게 된다.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바라보는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돈 쓰고 힘들지만 직접 두 눈으로 보러 여행을 떠나는게 아닐까한다. 아래의 사진들은 북쪽 게이트에서 찍었는데 망원경으로 보러갔다가 원하는 곳을 보지 못한채 사진만 찍었다.
론지입은 그리고 맨발인 나
이제 안녕
다시 남문 게이트쪽으로 이동을 했다. 왜냐고? 내 샌들이 있고 론지를 반납해야하니까(론지는 보증금을 주고 빌리는데 론지를 돌려줄때 보증금도 돌려주기 때문에 결국은 공짜로 빌려주는거다).
스님들의 기념촬영
모습을 내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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