뜀의 세상보기/07~08EGYPT

뒤죽박죽 이집트 여행 16(누비아마을)

"뜀" & "세인" 2008. 2. 5. 13:55

뒤죽박죽 이집트 여행 16(누비아마을)

 

 

 

2008.01.02 02:00~4:00 몽유병 환자?

 

아침일찍도 아닌 한참 꿈나라를 돌아다녀야할 시간에 아부심벨투어때문에 일어났다. 도대체 여행이 뭐길래 이렇게 나를 괴롭히나란 생각까지들면서도 볼건봐야지하는 심정으로 꾸역꾸역 고양이 세수를 한 후 호텔앞에서 2시30분에 만나기로한 택시를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않는 택시때문에 하루일정이 또 뒤죽박죽이 되는구나란 생각과 함께 일찍일어난 본전생각에 엄청나게 성질이 났지만 우짤껴???

일행은 혹시나 하는마음으로 아스완 역으로 이동해서 아부심벨 투어를 알아보았으나 그곳에 가려면 사전통보가 되어야한다면서 불가능함을 알려주었고 덕분에(?)새벽 4시쯤 다시 호텔로 돌아와서 코~잤다.

 

 

2008.01.02 09:00 밥먹자...

 

호텔 식당이다. 뭐, 그런대로 적당히 먹을만 했었고 창 밖으로 바라보는 나일강도 괜찮았다. 잠자는동안 몸유병(?)의 후유증이 남아있었지만...

 

 

 

 

 

2008.01.02 10:00 나들이 시작 

 

또다시 코렐리엉아의 글을 가져왔다...좋잖아. 상황설명이 잘되어있고 나는 편하게 넘길수있고..

 

아침을 먹고 나서 호텔을 나선 우리는 나일강 서과 섬들을 둘러보기 위해 필요한 펠루카(요트)를 대절하러 위해 아스완 시내 방향으로 걸었다. 호텔에서 나와 나일강가로 나오니 많은 선주들이 접근해 온다. 때로는 무시하며 몇 번을 지나쳐 멀찍이서도 우리를 봐왔을 한 선주의 질문에 심드렁한척 하며 얼마인지를 물었다. 행선지는 누비아마을, 암굴분묘군, 키치나섬, 엘레판티네섬이었다. 400파운드를 부른다. 놀구 있넹. 외면해 버렸더니 따라 다니며 얼마를 원하느냔다. 외면하고 다른 선주들의 접촉을 기대하며 그냥 강가를 걸었다. 100파운드까지는 교섭이 잘 되지만 그 이하가 쉽지 않았다. 적정가 70파운드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니 그렇게 교섭이 되는 선주가 나올 때까지 그냥 걸었다. 그래 봐야 첫 번째로 만난 선주를 만난 장소에서 100미터나 이동했을까. 70파운드에서 조금 더 주기를 원하는 선주를 만났다. 팁을 포함해 75파운드를 주되 그 이상은 안된다고 했더니 선뜻 그러자고 한다.

 

 

 

 

 

 

  


 [동영상:나일강 노총각]

 

 

 

   펠루카에서 바라본 암굴분묘군

 

 

2008.01.02 11:10 엘리판티네섬 누비아마을

 

 

 

수몰로 역사의 터를 잃고 사는 '누비아'인들의 땅

 


[아스완]으로부터 수단의 수도 [하르툼(Khartoum)] 부근까지의 나일강, 누비아사막을 포함하는 지역에서 부터 홍해에 이르는 지역이 옛 누비아 왕국의 터전이다.

기원전 8세기에 이미 왕국이 있었고, 14세기 까지도 융성했던 왕국은 19세기에 이르러 완전 쇄퇴하고, 누비아지역은 [이집트]와 [수단]이 분할해 갖는다. 따라서 '누비아' 족도 나위어 살게 되었다.

나일 강 하류의 숱한 문화유적들은 사실은 이들 누비아 족들의 유적이다. 유명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도 누비아 공주와 이집트 공주의 사랑의 삼각관계를 그린 것이다. 지금 여러분이 듣고 있는 것이 그 오페라에 나오는 '개선행진곡'이다.

'아스완 댐'과 '아스완 하이댐'이 생기면서 수몰이 되어 가장 크게 땅을 잃은 것은 '누비아'인 들이다. [아스완]에는 그들을 달래기 위한 '누비안'박물관이 있고, '누비안'족의 집단 거주지인 섬이 있다.

 

 

 

 누비아 마을 선착장에 다다랐을때 찍은 암굴분묘군의 바람의 돔

 

 

 

 

 아이들이 장난치는게 아니다..아니 장난치면서도 영업용으로 변신가능하다.

올라타고 사진 찍으면 걍 돈 줘야하니까..

 

 

 식수대다. 이집트를 돌아다니다보면 어느곳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중의 하나다.

그냥 먹고픈 사람은 마시면 될듯하나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쉬운 결정은 아니겠지...

 

 

 누비아 마을

 

[코레리엉아의 사진]

 

 

 

 

 

 

[여기까지 코 엉아가 찍은 사진]

 

 

 

강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살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을 들게했던 누비아마을을 좀더 보고픈 마음도 있긴했으나 약간씩 시간의 제약을 받고 있는 우리일행은 발 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누비아 마을에서 바라본 암굴분묘군인데 우린 이 길을 걸어올라갔다가 암굴분묘군의 입장권을 끊지않고 뒷 문으로 몰래 들어간 셈이 되어버렸다...

 

 

 

 

엘레판티네 [Elephantine, 아스완 섬]

 

 

(아)Jazῑrat Aswān.

이집트 상(上)이집트 지방의 아스완 주 아스완 시 맞은편에 있는 나일 강의 섬.


'엘레판티네'라는 이름은 파라오 아부(Abu)를 나타내는 그리스어이다. 제18·19대 왕조 이집트 왕들은 이곳에 홍수지역의 수양 신인 크눔, 크눔의 배우자 사티, 그의 친척인 세헬의 여신 아누케트에게 바치는 큰 신전을 지었다. 북쪽에는 이집트 고왕국과 중왕국의 제단이 있으며, 그들의 뛰어난 돌무덤들은 나일 강 서안 절벽 높은 곳에 있다. 고왕국(BC 2575경~2130경) 시기에 이곳은 이집트 최남단의 도시였고, 수단과 교역을 하는 출발지점이었기 때문에 '남쪽의 문'이라 알려져 있었다. 중왕국(BC 1938~1600경) 시기에는 이집트가 다스리는 누비아의 행정중심지였고, 신왕국(BC 1539~1075) 때는 누비아 지방의 일부였지만 사이테 시기(BC 664~525)부터 이곳은 다시 변경의 요새가 되었다. 오늘날 이 섬에는 누비아 마을 두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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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판티네(~파피루스 文書):Elephantine(지명)


[그] jElefantivnh(Elephantine) [영] Elephantine(Papyri)뜻은 [코끼리의 섬].

엘레판티네는 상(上) 애굽의 남쪽 나일강 가운데의 작은 섬(小群), 그 문서는 이 섬에서 1904-08년에 발견된 일군(一群)의 파피루스 문서를 가리킨다. 아람어의 편지로,전 407년의일부인,이섬에성전 건축의 허가를 청하기 위해 발신된 것. 이 섬의 유대인 성전은 지방신의 제사자의 선동에 의한 폭동으로 애굽인에 의해 파괴 되었는데, 유다의 바사(페르샤) 지사 바고아스(Bagoas)에 대해 유대인이 청원한 결과 재축되었다. 애굽왕조 말기(전 590년경)부터바사시대를 통하여 유대인 군사식민이 여기에 정착하고, 그들 자신의성전을 세우고 있었다. 이 섬은 아람어로 [예브 by, (yeb)]로 불리웠다.

[성경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