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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와 포항 1(경주 분황사)

"뜀" & "세인" 2017. 12. 8. 12:08

 

 

경주와 포항 1(경주 분황사)

 

2017.5.6.(토) ~ 5.7.(일)

 

2017.5.6.(토)

 

  윤하와 윤진이 할아버지의 생신이 며칠 남아있지 않아서 주말을 이용해서 포항으로 가기로 했다. 그래서 포항으로 내려가면서 경주를 들러서 스탬프 투어를 하기로 했는데 이번에는 "분황사"가 당첨되었다.

 

뻥뚫린  고속도로를 달려달려서 도착한 경주다.

 

 

 

경주톨게이트

 

 

아주 예전엔 포항으로 가려면 이곳을 꼭 지나쳤어야 했는데 요즘은 노선이 완전히 달려져서 일부러 가지 않으면 들리지 않게되는 톨게이트를 지나서 분황사에 도착을 했다.

 

분황사에 도착해서 맨 처음 한일이 입구에 있는 스탬프를 찾고 스탬프 리플릿에도 스탬프 노트에도 스탬프를 찍는것으로 분황사 탐방을 시작했다.

 

 

분황사 입구에 있는 스탬프

 

 

 

스탬프 노트를 들고 있는 윤진

 

 

분황사를 소개하는 안내문이다. 요즘 알쓸신잡의 유시민 덕분에 안내문을 읽는 사람이 많아졌으리라.

 

 

 

 

다음에서 가져온 분황사에 관한 소개글이다.

 


분황사(芬皇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이다. 분황사는 황룡사지와 잇닿아 있으면서 국보 제30호로 지정돼 있는 모전석탑으로도 유명하다.

선덕여왕 3년(634)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우리 민족이 낳은 위대한 고승 원효와 자장이 거쳐간 사찰로 명성이 높다. 선덕여왕 3년(634년)에 지어진 절로서, 원효대사가 거주하면서 화엄경소를 쓴 곳이다.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 경덕왕 14년(755년)에 불상주조의 대가인 강고 내말이 만든 약사여래상이 있었다.<BR><BR>선덕여왕의 권유로 자장법사도 오래 머물렀으며, 원효의 아들인 설총은 원효대사가 돌아가신 후 아버님의 소상을 만들어 모셨고 이 소상은 고려후기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원효가 이곳에서 해동종을 완성했다고하여 해동종을 분황종이라고도 한다.

 

이 절은 평지 일탑 일금당의 가람배치로서 다른 사찰에서 보듯 중문, 탑, 금당을 중심으로 회랑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나 절터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확실치는 않다. 통일신라 이전에 세운 모전탑으로 원형은 5층인지 7층인지 9층인지 알 수 없으나 그 중에서 지금은 3층(국보30호)만 남아있다. 신라탑은 전탑양식이 유행하여 백제의 미륵사지 목탑구조 모방 전탑과 결합하여 통일신라 석탑의 정형을 이루었다. 통일산라의 모전탑 및 전탑은 안동, 의성, 제천 등지에 남아있다. 임진왜란때에 왜구들이 이 탑을 반쯤 헐어갔다고 한다. <BR><BR>이 탑은 바다속의 안산암을 갈아서 쌓은 것으로 1915년 탑을 수리하다가 사리장치가 든 돌 상자 속에서는 구슬과 금은으로 된 바늘, 고려시대 화폐가 발견됨으로써
고려시대에도 보수가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바늘은 탑을 건립한 선덕여왕과 관계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에는 1층 탑신 4면에 감실을 만들고 돌문을 달았으며 이 입구마다 좌우로 수문장인 금강역사상이 있고, 탑에는 돌사자가 놓여 있다. 금강역사상은 조각이 아름답고 입체감이 두드러져 삼국시대 조각기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BR>분황사 경내, 당시의 우물 석정에는 아직도 물이 마르지 않고 있는데 이 우물 속에 호국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으며 1965년 우물 속에서 14구의 목이 부러진 석불들이 출토되었고 이 석불들은 경주국립박물관 경내에 전시되고 있다. 석정은 신라샘의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다. 초석의 규모로 보아 당시에는 대단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알수 있다. 지금의 약사전은 조선시대에 세워졌다.

 

현재 분황사 경내에는 분황사 모전석탑과 화쟁국사비적, 삼룡변어정(8각 석정)이라는 우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19호로
지정된 분황사약사여래입상 등이 있으며 석등과 대석 같은 많은 초석들과 허물어진 탑의 부재였던 벽돌 모양의 돌들이 한켠에 단정하게 쌓여
있다.

 

[Daum백과] 분황사

 

 

입장권을 끊고 분황사 안으로 진입전의 모습이다.

 

 

아빠 찰칵...

 

 

 

엄마 찰칵...

 

 

 

아빠가 찍은 윤하와 윤진

 

 

 

을 엄마가 찍었고...

 

 

분황사 www.bunhwangsa.org/도 이렇게 홈피가 있나보다.

 

 

 

 

분황사하면 딱 떠오르는 분황사 모전석탑이다.

 

이것 역시 다음에서 가져왔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慶州芬皇寺模塼石塔)

 

국보 제30호. 높이 930cm. 분황사 창건 당시에 세워진 것으로 안산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이다. 원래는 9층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3층뿐이다. 단층의 기단은 자연석으로 높게 쌓았으며, 그 위에 화강암으로 탑신받침을 마련하고 탑신을 쌓았다.

 

1층 탑신 4면에는 각각 감실을 만들고 문비를 달았는데, 감실 속에는 불상 같은 예배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아무 것도 없다. 문 좌우에는 화강암으로 조각하여 끼운 인왕상이 권법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매우 동적이며 근육의 표현에도 양감이 강조되어 사실적인 조각표현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표현기법은 중국의 톈룽산[天龍山] 석굴에 있는 수대(隋代)의 인왕상들과 비교된다.


기단의 네 귀퉁이에는 석사자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조각솜씨가 부드럽고 사실적이다. 옥개부는 전탑 특유의 구조인 상하에 층단이 있다. 1915년 수리 때 2층과 3층 사이의 석함 속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는데 은제사리합, 구슬류, 금동제장신구류 등이 수습되었다.

 

[Daum백과]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윤하와 윤진이는 석탑에는 관심이 없고 그냥 돌과 모래에 관심이 많다. 그래, 그 나이엔 너무나 당연한거고 여행을 다닐때마다 흔히 이루어지는 행동이니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기도 하다.

 

 

 

 

 

 

분황사 모전석탑

 

(안내문에 나오는 흔한 이야기가 아닌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가 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쩝) 

 

 

 

돌 가지고 노는 윤진

 

 

 

 

 

셀카 한 번 찍어주고

 

 

 

 

분황사 석정이다.

 

 

 

 

 

내가 다른곳을 둘러보고 있는동안 윤하와 윤진은 엄마의 모델로 변신해서 이렇게 사진을 찍었다.

 

 

 

똑같이 입고 똑같은 포즈를 취한 자매의 모습

 

 

 

이 종 치게 해달라고 했다. 다시 합류후에...

 

 

 

 

 

돌 탑 쌓는 윤하와 윤진

 

 

잠깐 홀로 다니가 다시 윤하와 윤진이를 만났는데 이렇게 열심히 돌 탑을 쌓고 있었다. 어린이들에게는 그냥 단순한 놀이가 어른들에게는 소원이란 단어가 생겨나니 어른들의 욕심이라고 해야할까?

 

 

 

 

집중 또 집중하는 윤하

 

 

가끔씩 윤하를 안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번개같이 달려와서 같이 안아달라는 윤진이 때문에 힘도 없는데 기적같은 힘을 발휘해서 두 명을 한꺼번에 안아야 하는데 힘은 들지만 좋긴 아주 좋다만 좀더 자라면 이것조차 불가능하겠지?

 

 

 

 

 

 

윤하, 윤진아 아빠는 힘들다고 ㅋㅋ

 

 

보광전에 모셔진 약사여래입상을 보기 위해서 그곳으로 들어갔다. 안내문의 설명과는 달리 특별한 감흥을 못느끼는건 어쩔수없다.

 

 

 

 

 

 

 

우리 두 꼬맹이들은 석탑도 약사여래입상에도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이렇게 노는게 재밌나보다. ㅋㅋ

 

 

 

 

부처님에게 돌 올려놓기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윤하와 윤진이의 요청에 따라서 천 원을 내고 종을 쳤다. 종치는데 돈 냈구나.

 

 

종 치는 윤하와 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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