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여행, 미얀마 24 (마하무니 파야)
2015.7.18.(토)~25(토)
2015.7.21.(화)
# 마하무니 파야 Mahamuni Paya
황금사원 쉐지곤 파고다, 황금바위 쨔익티요 파고다와 마하무니 불상이 미얀마의 3대 보물로 불리운다고 하는데 그 3대 보물중의 한 곳인 마하무니 불상을 보러 왔으니 그 불상사진을 먼저 올려놓고 시작한다.
라카인이 병합되면서 만달레이로 이운되어 안치된 마하무니 불상
여행전 기대치가 아주 높은 곳이었다. 여행을 하기전 그리고 한후에도 그곳이 어디였지 하는곳이 많은 나로서는 한 번 가면 잊지않을 곳도 필요했기 때문에 보다 집중해서 보기로 했다. 그 기대치를 저버리지 않았던 곳이다.
역시나 정문쪽이 아닌 옆 문으로 들어갔다.^^;
론지를 입고 긴 복도를 지나서...
이렇게 마하무니 불상을 만났다...
수 많은 사람들이 마하무니 불상에 붙인 금종이 때문에 불상이 울퉁불퉁해 보인다
모니터로도 보여준다
불심...
마하무니 파야는 만달레이 성에서 9km 남쪽에 위치한다. 보도파야 왕이 1784년에 건설한 사원으로 미얀마인들이 살아 있는 불상이라고 여기는 마하무니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미얀마의 3대 보물 중 쉐다곤, 짜익티요 가 석가모니의 머리카락인 불발을 안치한 것이라면, 이 마하무니 불상은 석가모니의 생전 모습과 똑같이 만들어지고, 그의 정기가 담겨 있는 불상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이 불상이 있던 곳은 쉐다곤과 짜익티요와는 달리 본래의 자리가 아닌 불상의 고향인 라카인 왕국에 있었던 것을 이 왕국이 점령, 합병될때 약탈되어 이곳으로 이운되었다고 한다. 라카인에관한 이야기들은 책에서 보기로 하고...
그들의 불심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수밖에 없었던...
하나의 아쉬운 점이라면 이곳 역시 여자들은 직접 불상에 금을 입히지 못한다는 점이다. 종교적인 관점에서의 규정이겠지만 오랜 세월동안 변하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것 같네. 불상에 직접 금을 입히지 못하는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대신 붙여달라고 한다는데 그 마음 잘 전달되길...나? 론지는 빌려서 입었지만 민 소매여서 여자들이랑 똑같이 먼 발치에서나마 볼수밖에 없었다. 이곳을 방문할 예정이라면 민 소매는 안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의는 론지를 빌려주기 때문에 문제없다만....
먼 발치에서나마...
미얀마에서는 태어난 요일의 불상에 자기 나이만큼 물을 부으면서 소원을 빈다고 한다. 내가 태어난 수요일 불상의 사진을 찍었는데 이곳에서는 보시를 해야했나보다. 나? 안했지. 양곤 쉐지곤 파고다에 갔을때 내 가족을 대신해서 모두 했다는...
석가족의 후예인 찬다 수리야 왕이 딘야와띠 왕국을 다스리던 시기에 왕은 인도에서 온 상인들을 통해 석가족의 왕자가 출가를 하여 깨달음을 얻었으며, 많은이들이 그의 설법을 듣는다는 말을 듣고 자신도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고자 매일 같이 기원을 했고 그 기원을 인지한 석가모니는 자신을 따르는 500명의 제자와 함께 딘야와띠를 방문했고 석가모니의 설법을 통해 왕은 법열을 느껴 불교에 귀의하고 불교국이 되었다. 석가모니가 인도로 돌아갈 때가 되자, 왕은 계속 그에게 예불을 드릴 수 있도록 그와 똑같은 형상의 청동상을 주조 시켰고 청동상이 완성 되었을때 석가모니가 보러 왔을때는 두 개의 태양이 떠오른 것처럼 보였다고 하는데 그만큼 잘만들었다는 소리인가? 아니면 불심인가? 하여간 석가모니는 자신과 똑같은 청동상을 일곱 번이나 안아주며 생기를 불어 넣었고 이 불상은 살아 있는 듯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고 석가모니가 떠난 후에도 단야와띠의 왕과 백성들은 불법의 왕국으로 남았고, 청동불상은 그들의 불심을 북동아주었다는 마하무니 불상의 이야기다.
민 소매때문에 눈 앞에서 보지 못한지라 코렐리님의 사진을 몇 장 얻어왔고 내가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들의 모습인데 뭐, 사실 난 망원렌즈로 찍긴 했지만 그곳까지가서 눈 앞에서 자세히 보지 못한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눈 앞에 맥주를 두고 먹지 못한 심정이리라.
그들의 불심을 인정 또 인정한다
내가 태어난 날의 부처상에 물을...
꾸토도 파야에서 상인들에 나에게 팔려고 했었던 물건을 이곳에서 실물을 볼수 있었는데 사원의 북서쪽 안마당의 작은 건물에는 라카인에서 가져온 여섯 개의 크메르 청동상이 있다. 그 중 세 개는 사자상인데 하나를 제외하고 많이 훼손 되었다고 하며, 그나마 제대로 남아 있는 사자 머리는 미얀마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두 개는 크메르식으로, 남자가 두르는 천인 샴폿을 입은 사람의 형상으로 이마에 꽃 장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수호신상으로 보인다. 이 청동상의 가슴과 배, 무릎, 발 부분은 반질반지해졌는데 청동상에 자신의 아픈 곳과 같은 부위를 문지르면 낫는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때 책에서 읽은 기억을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남들이 하는건 그냥 따라하고 보는지라 나역시 그랬다는...
또 나머지 하나는 머리가 세 개 달린 코기리 아이라바타이다. 코끼리 머리 세 개 중 중앙의 것은 크메르식 왕관을 썼고, 나머지는 변형된 형태인데 이곳에 30여 개의 청동 조형물이 있었는데 티보 왕의 명령으로 그것을 녹여 만달레이 궁을 방어하기 위한 포탄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요즘 IS가 문화재를 파괴하는것과 유사하다고 해야하나? 다시 돌아와서 원래 이곳의 조형물은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에 있던 것들인데 1431년 앙코르를 점령한 태국인들이 약탈해 아유타야로 가져갔고, 버마의 바인나웅 왕이 1564년에 아유타야를 점령해 전리품으로 가져온후 1600년엔 라카인의 라자지 왕이 바고를 침입해 수도인 무라욱 우로 다시 약탈했었고 마침내 보도파야왕이 라카인을 점령하면서 마하무니 불상과 함께 만달레이까지 왔다니 정말 돌고 돌아서 자리를 잡은거네. 그러나 앞으로 또 오랜 세월이 흐른후에는 아무도 알수없지 않은가?
청동상이 있는 왼쪽에는 거대한 편종이, 오른쪽에는 무게가 5톤인 버마의 전통 징이 있는데 편종은 의식에 상관없이 사용하는 반면 징의 경우는 불.법.승의 3보의 의식 후 마무리를 알리는데 사용 한다. 즉, 부처에게 예불을 드린 후나 불경을 독송한 뒤, 승려에 대한 경의나 보시를 행한 뒤에 울린단다...
징을 징하게 징~~징~~
괜찮징...
론지 입은 그 놈 좋징...
그 놈 참 괜찮징...
앙코르의 청동상이 있는 곳엣 바라본 곳으로 마하무니 불상이 안치된 본당이다. 라카인인들의 불상과 그들이 건설한 사원이기에 마하무니 사원은 '라카인 파야'라고도 불리운다는데 당시에 건설된 탑은 1884년의 화재로 전소 되었고, 오늘날 볼 수 있는 것은 최근에 재건축한 것으로 탑의 중앙에 있는 3.8M 높이의 좌불상이 라카인에서 가져온 마하무니 불상이라는데 마하무니 불상이 안치되면서부터 미얀마의 불상을 제작할 때 이 불상이 표준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만달레이 양식의 불상이라고 하면 마하무니 불상을 연상하면 된다.
마하무니 불상이 있는 본당
불교의식 때 사용되는 거대한 편종
두 사람이 함께 편종을 어깨에 맨 상태지만 무겁겠소이다
미얀마의 3대 보물 중 하나를 만난날이었다. 나머지 두 개는 양곤으로 돌아가서 보면 되는것이었고 뜨거운 날씨만큼 피로도의 증가로 사원의 바닥에서 한 참을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본당을 멀리서 바라봤다
따뜻? 혹은 뜨거움?
스님도 더운듯...
기대치를 가지고 갔던 곳인데 그 기대치를 불상 하나로 충분히 충족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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