뜀의 세상보기/10 CHINA

그놈들의 방랑기 12 (화청지 2)

"뜀" & "세인" 2010. 8. 17. 15:16

그놈들의 방랑기 12 (화청지 2)

 

2010.07.07~11

 

2010.07.09. (금)

 

 태종 이세민이 밤하늘의 별과 달을 보면서 온천을 했다는 성진탕(星辰湯)으로 당시에는 지붕이 없었다고 하는데 분위기는 좋았겠다.

 

 

성진탕(星辰湯)

 

 

탕의 주변에 걸린 그림은 현종과 양귀비에 관한 이야기라는데...까지만 관심을 가지기로 했다. 더이상 파헤치는것도 웃기려니와 너무 복잡해지는것도 싫기 때문이다.

 

 

이 성진탕은 물줄기를 여러 곳에 거쳐 나오게 하여 뜨거운 물을 적당히 식혀주었고 물줄기의 세기도 조절하였단다. 그리고 가로로 길게 파여진 홈들은 시중드는 궁녀들이 서있던 곳이란다.오홋...그리고 이 곳에는 탈의실이 있었는데 역시나 태종 이세민(李世民)이 사용하던 곳이란다.

 

 

각 나라의 언어로 이러쿵저러쿵 적어놨는데 왜 한글은 없는겨? 한국관광객들 진짜 많이오는데...

 

 

 

 

 

상식탕(尙食湯)으로 이동했다. 이 곳은 천자의 식사를 맡은 관리들이 사용하던 목욕탕으로 상식탕(尙食湯)의 바닥에는 구멍이 파여 있는데 이것은 황제의 음식을 요리하는 요리사들이 손으로 자신의 발을 씻지 않고 구멍을 이용해서 발을 닦도록 했던 것이라고 한다. 아무리 임금님이 목욕한 물이 성스러운 물이라고 생각해도 그건 심한것 같네.

 

 

상식탕(尙食湯)

 

 

 

재활용한 물(=임금님 목욕물)을 사용했던 곳이군...

 

 

 

실제 목욕하는 모습을 볼 수도 없고 상상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 탕 저 탕 빠지지않고 둘러보았다. 역사적인 인물들이 목욕한것은 사실이지만 그 곳까지 찾아와서 꼭 봐야하는지는 잘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밖으로 나와서 보니 옮겨진 양귀비의 뒷 태를 감상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네.

 

 

양귀비의 뒷 태

 

 

뉘신지?

 

 

 

 

서안사변(西安事變)이 일어났던 오간청(五間聽)으로 이동했다. 그냥 다섯 칸짜리 건물이라는 뜻이라는데 1936년 12월 12일 공산군과의 전투를 독려하기 위해 남경에서 서안으로 와서 이 건물에 묵고 있던 장제스는 서안에 주둔하고 있던 만주출신의 장학량(張學良)은공산당 총사령부의 부사령관직도 겸하고 있었는데 그의 부하들은 중앙의 내전정지(內戰停止), 일치항일(一致抗日)의 호소를 지지하였다. 장제스는 장학량에게 감금되었고 장학량은 장개석에게 국공내전 종식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소식은 중국 전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고 남경에서는 즉각 장학량을 공격하자는 강경파가 있었는데 송미령(장제스의 부인)은 이를 무마시키고 서안으로 향했고 국공합작이 이루어지고,  공산당을 머저 소탕하고 나서 통일을 이룬다는 "선초공(先剿共) 후통일(後統一)"이라는 장제스 정권의 노선이 바뀌게 되었다. 이같은 원한으로 장제스는 공산당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대만으로 피신할 때 장학량을 끌고가 투옥했고 지금도 장제스가 묵었던 집무실 유리창과 벽에는 총알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서안사변이 중국내부에 의해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당시 한중일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음은 자명한데 더이상은 머리복잡해져서 통과...

 

사실 2002년에 왔을때 이 곳을 보면서도 그냥 총알자국이 있네라고만 했을뿐 아무런 생각없이 봤는데 이번에는 조금더 알게되었네. 아마도 세 번째 방문할때쯤엔 서안사변에 관해서 공부해서 갈지도 모르겠다.

 

 

오간청을 구경하는 사람들

 

 

아래의 사진들은 집무실과 숙소 그리고 경호요원들이 묵었던 방이다. 그리고 서안사변을 상징하고 있는 총알들...

 

 

 

 

 

 

 

 

 

 

 

 

 

 

 

 

 

 

 

 

 

 

 

화청지를 모두 둘러보았다. 깜빡잊어버리고 양귀비가 머리를 말렸다는 비하각(飛霞閣) 사진을 찍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어쩌리오. 그냥 다음에 다시 가게되면 머리 말리는 흉내라도 내면서 사진을 찍어버리면 되는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