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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들의 방랑기 18 (시안성벽에서)

"뜀" & "세인" 2010. 10. 12. 13:56

그놈들의 방랑기 18 (시안성벽에서)

 

2010.07.07~11

 

2010.07.10. (토)

 

여행자로 맞이하는 아침은 숙취의 후유증이 남아있지 않다면 언제나 기분좋은법이다. 일에 대한 부담감도 느낄 필요도 없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볼수 있다는 기대치가 더욱 많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었다. 이 곳의 분위기는 있으면 있을수록 편안하면서도 여행자의 느낌을 살릴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시간이 흘러서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은 못하겠지만 (분명히 코엉아님은 기억할것이다.) 평소라면 먹지 않았을 아침을 여행중이니 깔끔하게 먹어주고...

 

 

숙소내의 식당이라고 해야하나?

 

 

 

 

 

 

 

 

 

하루가 더 남아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기에 어떻게보면 여행을 온전히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아침을 해결한후 숙소에 나와서 이러쿵저러쿵 일정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찍어본 사진이다.

 

 

관심가지고 사진 찍혀주는 두 사람과 찍는 한 사람

 

살짝 귀찮기도해서 시안성벽에 관해서 퍼왔다. 나에게는 두 번째 방문이었지만 똑같은 장소에 다시한번 가게 되더라도 다르게 즐길수 있다는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전거 타기놀이"를 하자고 함께한 두 사람에게 이야기했었다.

 

 

 서안은 당나라 때 장안성으로 불렸고,원나라 때 봉원성으로 불렸으며,현재의 장안성벽은 당나라

장안성의 기초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장안성벽은 둘레가13.7km이고 동서로 약 2.6km 남북으로 4.2km 사각형으로 되어 있다.성의 높이

는 12km이고 꼭대기의 넓이는 12~14km이며 아래쪽 넓이는 15~18km이다.성벽의 바깥쪽은 성을

보호하는 하천이다.4개의 성문이 있다(동쪽의 장각문,서쪽의 안정문,남쪽의 영정문,북쪽의 안원문).

4개의 큰 성문 밖에는 각각 반원형의 옹성 혹은 월성을 만들었다.월성과 큰 성문 위에는 각각 높은

헐산식 성루를 만들고 두 건물을 마주보게 하여 성루 위의 모든 동태를 엄밀히 살필 수 있었다.

      서안 성벽은 이미 6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며,규모가 크고 보존이 비교적 완전하여 둘러볼 가치가

있다.

      직사각형 각각의 측면마다 성문이 있으며 각각의 성문 위로 3개의 탑이 서 있다. 높고 두터운 고성벽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성벽이라 할 수 있다. 성벽 위는 차로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으며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보는 성 안과 밖의 전망도 아름답다.

      각 성벽 위에는 성루가 있으며, 이곳에서 시내를 시원스럽게 조망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동서남북 각각의 문은 나름대로 쓰임이 달랐는데, 아래와 같이 사용되었다.

      동문(東門)을 장락문(长乐门)이라 하고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곡식, 생필품 등의 공물들이 들어오는 문으로 사용되었다. 명말 이자성의 기의군이 동문으로 서안에 들어왔다. 이자성 기의군이 동문을 통해 들어올 때, 성문 위에 걸려 있는 ‘長樂門’의 편액을 보고 “황제가 오랫동안 즐거웠으니 백성은 오랫동안 고통스러웠겠어!”라고 한탄을 하자, 부하 장병들이 격분하여 이 성루를 불태워버렸다가 청대 다시 건축되었다. 

      서문(西門)을 안정문(安定门)이라 하고, 실크로드로 향해 열린 문으로 서방의 상인들이 낙타를 타고 출입했다고 한다.

남문(南門)을 영녕문(永宁门)하고 황제만이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왔을 때에도 황제가 직접 이 문을 통해 나가서 맞이하였다고 한다. 남문은 서안의 성문 중 가장 오래된  성벽으로 582년 수나라 초기에 만들어 졌으며, 현재 전체 성벽 중 가장 완벽하게 복원되어 있다.

      황성 남쪽의 세개의 문(함광문, 주작문, 안상문) 중 맨 오른쪽은 안상문(安上門)으로 당말 한건(韓建)이 성을 축소할 때 남문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명대 이 문을 영령문(永寧門)이라고 명칭을 바꾸었다.

      주작문(朱雀門)은 당 장안성 황성의 정남문으로 문 아래는 도시 중앙의 주작대로이다. 수나라 당시 황제는 여기서 경전활동을 거행하였다. 589년 중국을 통일 할 때 수 문제가 주작문 성루에서 개선대군을 검열하였다.  당나라 말 한건이 성을 축조할 때 폐쇄되었다가 1986년도에 새롭게 개통되었다.

 

      북문(北門)은 안원문(安远门)이라고 하고 사절단이 오가는 문으로 사용되었다.

[출처] 서안성벽(西安城墻) (중국서안여행정보) |작성자 빵사장

숙소에서 길만 건너면 있는 남문이다. 예전에도 지금도 남문을 통해서 시안성벽에 올라가게 되었다.

 

길건너서 바라본 남문

 

 

 

길 건너와서 바라본 남문

 

 

입장티켓(아마도 코엉아님은 학생증으로 할인받은것 같네)

 

 

매표소

 

 

북이구만..

 

 

남문의 영정문

 

 

이제 나이도 있는데 *%$&)&

 

 

남문에서 바라본  종러우(钟楼, 종루)와 그 사이의 시내 난따지에(南大街, 남대가)의 모습

 

 

남문성벽위의 모습

 

예전에 왔을때는 이곳 성벽위까지만 올라와서 살짝 사진 몇 장만 찍고 다시 내려가서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을 했었던것 같은데 세월이 흘러간만큼 내 여행스타일도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냐고? 이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한바퀴 돌생각을 했으니까...

 

 

어딜가나 말썽장이 여행자들이 있나보다.

 

뭐, 예전 터키에 갔을때 코모님께서 이상한곳으로 내려갔다가 못올라와서 한참을 낑낑거렸던 생각이 문득나네. 

 

 

성벽에서 기념으로 찬바람의 한 컷

 

사진을 찍으면서 알았다. 우리 숙소 근처에 또다른 유스호스텔이 존재하고 있었다는것을...

다음에 시안을 방문할때 저곳에 가볼까? 아니면 정이 있는데 두 번갔던곳으로 갈까? 음, 그건 그때 생각해보자고.

 

 

코엉아님도 한 컷

 

 

나역시 한 컷

 

 

 대포구나. 대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