뜀의 세상보기/12 PERU

페루, 그곳으로 18(삭사이와망)

"뜀" & "세인" 2012. 4. 5. 01:04

 

페루, 그곳으로 18(삭사이와망)

 

2012.01.28~02.07.

 

다섯째날(내가 잠들고 일어난것을 기준으로...)

 

# 삭사이와망...

 

  버스에 올랐다. 페루인들에게 스페인군들이 이방인이었듯 이 곳 버스속의 우리도 이방인이었을까? 그들만의 리그에 떨어진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쿠스코 시내에서 대략 2km 북쪽에 있는 곳으로 거리만 믿고 걸어가게 되면 땀 깨나 흘릴 될것이다. 쿠스코 시내를 벗어나려면 일단 언덕을 넘어야 하는데 세월을 낚는 여행자라면 모를까 우리처럼 시간에 쫒기는 여행자라면 기름으로 움직이는 물체를 선호할수밖에 없는데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문명의 혜택을 충분히 누릴 정신적인 준비가 철저하게 되어있는 나는 당연히 버스를 이용했고 예전 잉카인들이 자기네들에게는 없었던 무법의 침략자 스페인인들이 타고 왔던 말을 보고 엄청나게 놀랐듯이 지금의 자동차나 버스를 보게 되면 어떤 반응이 올까?

 

 

얼른얼른 타세요...

 

 

한국이나 외국이나 가이드는 열심히 이야기거리를 풀어 놓는다

 

 

짧은 시간의 이동을 통해서 삭사이우아망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티켓을 확인하는 아저씨의 모자를 보고 웃을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도 없을법한 저런 모자를 어디에서 구해서 쓰고 있었을까? 이 아저씨는 친한파일까? 아니면 우연일까?

 

 

태극기모자의 검표원 아저씨

 

 

이렇게 티켓에 구멍을 뚫어준다

 

 

멀리보이는 저곳 예수상에는 가보지 못했다

 

 

이 곳 삭사이와망...

 

망꼬 잉카가 스페인군을 맞이해서 전투를 벌일때 수없이 많은 원주민들이 죽어 그 시체가 산같이 쌓였고 그 시체들을 뜯어 먹으려는 매들이 몰려들어 포식했기에 유적지의 이름이 삭사이와망, 즉 '배부르게 먹은 매'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주장과 쿠스코가 푸마의 모양대로 지어졌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 유적지작 푸마의 머리에 해당하기 때문에 삭사이와망은 삭사우마, 즉 '점박이 얼룩무늬 머리'라는 말의 변형이라는 주장도 펼치고 있단다. 아, 그리고 이곳에서 스페인놈들과 싸울때 밤에는 싸우지 않는 잉카의 전통을 이용해 잉카의 병사들을 몰살했다고 하는데 스페인놈들이 똑똑한건지 망꼬 잉카가 어리숙한건지 어쨌든 소수의 침략자 스페인군들에게  목숨을 잃은 그들은 누가 위로해줘야하나. 어느나라 어느시대이건 지도자의 능력이 중요한 대목이기도 한데 페루의 기본적인 역사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답답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원래 이 건축물은 적의 침입으로부터 쿠스코를 방어하기 위해서 지은 요새 또는 성곽이란 주장이 우세했지만 1980년대의 발굴에서 제관들이 미이라가 발굴되면서부터 이곳이 종교적인 중심지였으리란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는 잉카인들이 종교적인 건물과 군사적인 건물들을 구분하지 않고 살았다는 주장이 우세하다고 하는데 정확한 사실 확인은 역사학자들의 일로 남겨두고...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패키지 팀을 따라서 쫄래쫄래 발걸음을 옮겼더니 3단으로 쌓여진 삭사이와망의 지그재그형 성벽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원주민들이 목숨을 잃은 아픈 역사를 가진곳인데 소풍오면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이 들었다.

 

 

성벽의 길이는 366m, 맨아래층에는 22개의 톱니같이 튀어나온 부분이 있고 벽의 높이는 약 6.5m, 그 위의 두 번째 벽의 높이는 약 5m, 맨 윗벽의 높이는 약 2.8m라고 하니 아래쪽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머리를 치켜들어야 윗 부분을 볼 수 있었다. 위쪽으로 갈수록 돌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맨 아래층의 성벽에는 길이 11.6m, 높이 5.5m, 두께 2m에 달하는 바위가 사용되었고 8.5m의 높이에 약 360톤의 무게가 나가는 돌을 사용했다는데 이래서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보는것과 직접 두 눈으로 현장에서 보는것의 감흥이 다르다는것을 느끼게 해준다. 비싼돈 들여서 간 보람이 있는게지.

 

 

사진상으로 별것 아니네라고 생각하지 마시라

 

 

직접가서 가까이에서 보면 감탄사가 나온다

 

 

어떻게? "와우,,,대단하네" 라고...

 

 

음, 이 대목에서 초를 치누만...

 

 

큰 돌들의 정교한 쌓기라?

 

아마도 올림픽에 돌쌓기 종목이 있었다면 페루와 캄보디아 등의 몇 몇 국가가 금메달 후보가 될듯한데...

 

 

 

그대는 누구신지?

 

 

내가 너에게 물어야하는거니? 니가 나에게 물어봐야 하는거니?

 

 

친절했던 가이드 같은데 그 가이드님이 또 모든 관광객들을 모이게 했다. 왜냐고? 그의 직업이 유적지를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으니까. 그럼 나는 어떻게 했을까? 역시나 나홀로 놀이를 진행했다. 물론 이곳에서는 코엉아님도 자기만의 홀로 놀이를 했던것으로 기억된다.

 

이곳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는 적당히 가지고 있었기에 충분히 홀로 놀이를 감행해도 심심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빠듯함을 느꼈다고 해야할까? 잠깐잠깐 코엉아님의 모습을 찾아보곤 하는데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을때가 많지만 부처님 손바닥안처럼 언제나 다시 만날수 있으니 각자 열심히 찰칵찰칵 소리를 들으면서 각자의 세계로...

 

 

 

가이드가 빨간 깃발을 든게 아니네...빨간 깃발을 든 그대는 누구?

 

 

이 곳의 성벽들을 쌓는데 쓰인 돌은 세 가지라고 한다. 맨아래층의 가장 큰 바위들은 그 맞은편의 로다데로(Rodadero)언덕의 돌과 똑같은 쑥색 섬록암들로 이 부근의 돌을 캐내서 사용한 흔적은 없지만 이 곳에서 쉽게 발견되는 돌을 사용한것을 보면 채석장이 그다지 멀지않은 곳에 있다는것을 추측하게 해주면 탑을 쌓는데 사용했을 검정색 안산암은 이 근처에 없는 돌로 가장 가까운 채석장이 각각 15km와 30km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고하니 운반을 위해서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했을테고 나머지 회색 석회암은 유까이 골짜기에서 가져온 것들이란다.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 놨을텐데 침략자들이 쿠스코 성당이나 건물을 짓기 위해서 가져가서 사용했다고하니 정말 몹쓸짓을 한게지. 그러니 두고두고 욕을 먹는거고...

 

 

 

건축학도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어떻게 쌓았냐고 그리고 지금 이렇게 쌓을수 있냐고

 

 

거대한 돌과 나?

 

 

 

라고요...

 

이렇게 큰 돌도 정교하게 끼워맞추니 12각의 돌쯤은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듯

 

가이드 설명 안듣고 사진을 찍고 있었군요

 

다시 지그재그 형태의 그 돌들을 바라보며

 

맞은편의 로다데로 언덕인가?

 

이곳 로다데로 언덕의 바위에는 의자처럼 파놓은 곳이 있는데 보통 왕의 자리, 왕의 의자라고 불린다고 하는데 이곳에 앉으면 삭사이와망이 한 눈에 들어온다는데 그당시엔 기억이 나지 않아서 가보지 않았다...이래서 기억력이 좋든지 예전처럼 잘 정리해서 가져가든지 했어야 함인데...

 

방향을 돌렸다. 삭사이와망...

 

봐도봐도 대단하다

 

 

잠깐 누웠다.

 

하늘좋고 바람좋고 사람좋고...

 

 

나란 사람말이다

 

 

카메라가 쉴틈이 없다. 피사체를 담아야하고 간직해야하니 고단할만하겠지만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불만은 없는듯 했으나 다음날 일 그만 하겠다는 불만을 대박으로 한 판 화끈하게 보여주는 성질도 가지고 있었다.

 

 

 

 

 

맨 아래층의 문을 따우뿡꾸(Tiupuncu), 모래문 이라고 하는데 내가 본 곳의 문은 이 곳 밖에 없으니 맞는듯 하고 두 번째 성벽의 문은 이 문을 만든 사람의 이름을 따서 아까와나의 문(Acahuanapuncu)이라고 부르는데 왜 못본거지? 아니 봤는데 몰라봤을수도 있겠다. 그리고 세 번째 문은 뷔라꼬차의 문(Viracochapuncu)이라는데 이 문 역시 못봤거나 봐도 몰라봤다는...쯧쯧,,,

 

 

 

자, 올라가봅시다

 

높은곳은 좋은거야. 보이는게 많거든...

 

올라가면서 본 맞은편의 로다데로 언덕

 

세 개의 문을 지나 맨 꼭대기에 올라오면 건물터들이 있단다. 그래 분명 있었다. 읽었던 책을 제대로 정리해놓지 않아서 용도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여행후기를 쓰면서 확인했다. 옛날에는 이 곳에 세 개의 탑이 있었다고 한다. 그 중 가장 큰 것이 무유마르까(Muyumarca;둥근마을)로 지름이 22m에 달한다니 그저 놀라울뿐이고 이 탑안에는 수로로 연결된 샘이 있어서 물이 흘러 나왔고 이 물을 모으는 저수지가 있었다는데 페루는 어느곳을 가든지 물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물을 확보하는 능력만큼 그들이 가진 여러가지 역사와 기술을 후대까지 남기는 작업에는 등한시하는 의외성을 느낄 수 있다.

 

 

- 맨 꼭대기에서 바라본 전경들 -

 

 

 

 

 

 

 

 

 

 

높은곳에 오르면 일단 기분이 좋아진다. 뻥뚫린 곳에서 느끼는 청량감은 여행의 보너스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서 여유를 가지고 싶었지만 가이드가 제시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즉, 버스 놓치지 않고 타려면 이라기 보다는 약속 안지키는 어글리 코리안이 되기 싫어서 발길을 돌려서 내려 왔더니 다른곳에서 한참을 머문듯한 코엉아님이 보인다. 그래서 이야기해줬다. 윗쪽도 멋지니 가보라고...

 

아마도 마음 급한 코엉아님은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이 다녀왔을 것이다.

 

 

 

삭사이와망 안녕이다.

 

가는곳마다 잉카시대의 아픔이 담겨 있다보니 살짝 측은한 마음도 들기도 했지만 그들의 역사와는 무관한 그냥 평범한 여행자일뿐...

 

 

인형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