뜀의 세상보기/12 PERU

페루, 그곳으로 31(리마로...)

"뜀" & "세인" 2012. 6. 26. 16:15

 

페루, 그곳으로 31(리마로...)

 

2012.01.28~02.07.

 

여덟째날(내가 잠들고 일어난것을 기준으로...)

 

(한국시간으로 2월 4일)

 

 # 리마로...

 

 잉카제국이 안데스 산맥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수도가 될 수 있었던 꾸스꼬는 스페인 정복이후 고산보다 해안 문화에 익숙했던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버림 받았다. 이미 철저하게 유린되고 발가 벗겨진 꾸스꼬에 관심이 줄어든 반면 스페인과 원활한 교통을 위해 점점 리마에 중점을 두게 되었던 것이다. 삐사로는 1535년 리마의 해안가에 자기들의 수도를 건설했다. 1650년의 대지진과 1780년 뚜빡 아마루 2세의 독립운동이 있었지만 유럽의 무자비한 진압에 반란평정으로 끝을 맺었으며 꾸스꼬는 조용한 콜로니엄 도시로 물러나 앉았다. 페루 페루비안에 나오는 글이다.

 

침략자들은 시대를 떠나서 자신들이 가져갈 약탈물의 운반과 식민지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서 새로운 철도를 놓거나 심지어 리마처럼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버린다. 보통 한 나라의 수도쯤 되는 도시이면 그들만의 자긍심을 느낄만한 탄생설화가 하나둘쯤 있기 마련인데 그런면에서 수도의 기능을 박탈당한 쿠스코와 침략자의 이익을 위해서 수도로 만들 리마는 슬픔을 공유하는 도시하고 단정지어야 할까?

 

 

# 새벽녘의 아르마스광장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아쉽다. 아쉬움을 느꼈다면 그곳은 나에게 좋은 여행지였음이다. 늘 여행지를 떠날때면 언제가 다시올 수 있을까?란 꼬리표를 달지만 씨엠립도 두바이도 암스테르담도 또다른 도시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다시 찾게되는것을 보면 이곳 또한 다시 찾을날이 있으리라.

 

쿠스코여, 아르마스광장이여. 오랜세월을 지켜왔듯 다시 내가올때까지 그자리에 그대로 있으시길...

 

 

 

 

지방의 작은 공항처럼 아담하지만 처음 도착했을때의 가슴 답답함은 없다. 그만큼 적응이 되었는데 떠난다는 이야기가 되겠지. 이른 아침부터 후다닥거리면서 나와서 한시간전쯤에 도착했는데 그들만의 방식인지 7시 40분 출발 비행기가 어김없이 지연된다. 아, 이건아니지만 어쩌리오. 대략 50여분쯤 기다렸을까? 그때 출발할 수 있었는데 50분밖에 늦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은 왜 들었을까? 하여간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이라니...

 

 

간략해진 항공권이지만 왠지 정은 없어진것 같은...

 

 

 

 

 

 

아래의 목각인형이라고 해야할까? 상점에 진열된것이 눈에 띄었는데 자꾸만 눈길이 갔다. 본래 이런것에 그렇게 관심이 없는데 이상하게 끌리게 된다. 부위별로 만들어져서 본드로 붙여놓은듯 한데 얼마일까 확인해보니 50달러쯤 한다. 대략 6만원 돈이란 생각에 망설이게 된다. 살까말까를 고민하다 결국 구입을 하지 못하고 쿠스코를 떠났는데 결국 리마를 떠날때 구입하게 된다.

 

 

 

 

여행을 할때면 각 나라의 화장실 표지판을 찍는 취미가 있다. 가끔은 화장실 내부도 촬영(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라. 그 나라의 화장실 문화에 관심이 있을뿐이다)하는데 제법 모았으니 언젠가 한 번에 쫘악 펼치는 날이 있겠지...

 

 

 

 

 

 

 

우리를 리마까지 무사히 모셔다줄 B-737항공기다. 나름 가죽시트로 되어있고 사진으로는 분위기 있어보이지만 왠지 오래된 듯한 그런 느낌이 마구마구 들고(실내에 다시 칠해진 페이트 흔적이 여러곳 보였기 때문이다) 제대로 날아갈까가 의심스러워지긴 하지만 무사착륙과 아닌것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그냥 안전한 비행만 기원할 뿐...

 

 

 

 

 

 

 

 

 

 

 

 

 

 

 

 

자리가 남아서 편한 곳으로 이동했다. 왜냐고? 코엉아님은 일단 남자니 같이 앉아 있지 않아도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고 오히려 편하게 자리잡고 있을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인이었다면(^&$^()^^$&&*(

 

 

비행기 안에서 여행을 가기전에 수첩에 적어놓은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페루를 정복한 '프란시스코 피사로'에 관한 내용이다. 페루에 관한 책을 읽을때 잠깐잠깐씩 두서없이 나쁜 머리에 의한 기억으로 요약했었던 그때 그 수첩에 적혀있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는다. (책의 순서에 따라서...나에게 강하게 기억된 부분들로만,,,)

 

 

" 프란시스코 피사로",,,

 

아, 이 사람의 정체는 뭘까로 시작되었다. 186명(정확하지 않다. 책 읽은지가 너무 오래된게야...)의 인원으로 잉카제국을 멸망으로 이끌었으니 궁금할수밖에 없게 만든 인물이었다.

 

- 글을 몰랐던 그는 미천한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린 나이에 신세계로 가는 원정대에 합류하며 원주민과의 전쟁에서 잔뼈가 굵은 군인으로 성장한 피사로는 돌료 알마그로와 원정대를 꾸려 잉카문명의 존재를 확인 후 에스파냐 국왕의 허락하에 다시 신세계로 향하는데 콜럼버스의 보고서가 피사로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심을 유발하게 만들었다.

 

피사로는 사생아로 태어나 신분이 바닥이었던 그는 평생 문맹으로 살았는데 그는 신분상승의 기회는 상류계급과 결혼을 하거나 전쟁에서 이름을 날리는 것이라는 생각에 원정을 통한 새로운 세계의 정복을 통해서 신분상승을 꾀했다. 16C 에스파냐는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 시대로 변하는 시기였고 화약의 발명으로 영주의 성도 요새가 될 수 없었고 보수를 받을 수 없게된 소작농들은 상업이 번성하는 도시로 가서 돈을 모으고 회사를 설립해서 영주처럼 땅을 구하고 신분 세탁이 가능해진 상황이었다.

 

피사로는 직업군인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상황으로 탐험시 투자한만큼 이익이 돌아갔는 체제를 이룬 상황에서 에스파냐 칙령에 따르면 신대륙 사람들도 에스파냐 국왕의 시민이라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신세계의 원주민은 교황의 칙령에 반대할 권리가 없단다. 도대체 그 권리는 어디서 나온건지...

 

- 그 시대의 잉카는 왕이 후계자를 지명하거나 지명해도 형제간의 싸움에서 승자에게 왕위를 인정하는 문화였기에 내전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잉카황제 아타우알파는 스페인인들에게 포로로 잡힌 후(피사로가 186명 - 정확히 몇 명이었지? 기억이 나지않네 -의 군대로 잉카제국을 점령해버렸다) 방에 가득 황금으로 채워주겠다며 자신을 풀어 달라고 간청하면서도 밀정을 보내 자신의 황위에 도전했던 형 우마스카르를 암살해 버릴만큼 이방인보다 형이 더 위협적으로 느꼈다는데 그만큼 자신들만의 세계에 갇혀 살았다는 이야기겠지. 어쨌든 피사로는 아타우알파를 이용할 필요성을 느꼈고 아타우알파는 피사로 일행이 전리품만 챙기면 떠날것이란 멍청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황금을 길이 6.7m, 넓이 5.2m인 방의 벽 중간 보다 높은 지점에 선을 긋고 황금을 주겠다고 말한다...

 

- "알마그로"

 

피사로의 동료인데 피사로는 그를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고 부하라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서 시간이 흐를수록 둘 사이의 틈이 생기게 되고,,,

 

알마그로는 늘 금의 분배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되는데 피사로보다 5개월 늦게 잉카제국에 입성했기 때문이기도 하고,,,하여간 피사로의 기병들은 은 180파운드 금 90파운드를 받았는데 황금 90파운드는 그당시 그들의 183년치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이라고 하니 신세계에 대한 욕망이 생길수 밖에 없는 구조였을 것이다.

 

- 피사로의 목표는 '쿠스코'의 점령이었다. 피사로라는 사람은 협상을 앞세우는 스타일이었는데 이와는 반대로 알마그로와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뜻과 배치될때는 타협이 아닌 살해가 우선이었는데 결국 왕을 목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워 버렸는데 죽기전의 왕은 아들의 안위를 위해서인지 내세를 위해서인지(죽어서도 미이라로 보관하는 전통) 기독교로 개종했으나 불에 태워져 버렸으니 말짱도루묵이라고 해야할까.

 

- 죽은 우아이나 카팍황제의 맏형 투팍우알파를 황제로 옹립했으나 두달만에 죽고 황제없이 계속 정복전의 연속이었다. 피사로의 쿠스코 입성은 3년전 파나마를 출발해서 긴여정의 대미를 장식하는 순간이었을테고 카하마르카에서 쿠스코까지 3개월에 걸쳐 960km의 여정동안 사상자는 6명밖에 없었으니,,,

 

-  망코잉카(아타우알파와 우아스카르의 동새인 도시에 적자 우아스카르의뒤를 이을수 있는 황실의 핏줄 되시겠다)를 이용해서 지방부족들의 도전을 저지하려고 노력하며 이때까지도 잉카의 일부만을 지배하는 상태였으니 계속되는 내전과 망코잉카는 잉카제국 권위를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해 나갔다. 여행지가 되어버린 역사의 현장에서 보면 자랑스럽게 스페인인들과의 싸움에 전력을 다했다지만 그건 그들만의 변명아닌 변명으로 들릴뿐 이었고,,,

 

피사로는 잉카의 장군들을 모두 제거하고 에스퍄의 부유한 식민도시로 변형시키는 일에 착수하는데 알마그로와의 관계정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불행의 씨앗이 잉태하게 되는데 피사로와 알마그로는 쿠스코의 지배문제로 알력이 생기기 시작했고 잉카의 황제인 망코잉카는 스페인인들에 대한 반란을 꿈꾸기 시작했고,,,

 

- 알마그로는 다시 자신의 몫이었던 남쪽 탐사와 정복을, 피사로는 해안에서 에스파냐 도시 건설을 위해서 떠나면서(그곳이 리마다) 후안을 부총독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남아있던 곤살로는 망코잉카의 부인(첫 번째 부인만 대접을 받던 시스템)을 달라고 해서 분란을 일으키고 결국 왕비를 뺏어버렸다.

 

- 반란을 계획했던 망고잉카는 반란에 실패한 후 다시 잡혀 왔으나 피사로의 동생이 쿠스코로 와서 에스파냐의 이익을 위해서 망코잉카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망코잉카는 반란을 멈추지 않고 계속 하게 되는데 2년 동안의 꼭두각시 노릇에서 벗어나 에스파냐인들에 대한 공격을 감행 했으나 에스파냐인들은 망코잉카를 반대하는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근근히 반란을 막을수 있었으니 어찌 에스파냐인들만 탓하리오.

 

- 삭사이와망은 외세의 방어를 위해서 만들어 졌을텐데 그곳에서 도시로 공격하는 아이러니(물론 외세에 뺏긴것을 되찾기 위함이지만)가 발생한다. 에스파냐인들은 결국 삭사이와망을 점령했는데 그당시 피사로는 리막강을 경계로 잉카어로 대변인을 뜻하는 리막이 변하여 리마라는 이름이된 리마를 건설중인 상태였고 삭사이와망을 점령했지만 에스파냐인들은 고립상태로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 시간이 흘러 피사로와 알마그로간의 배분이 생겼을 때 이를 이용 하려던 망고잉카늬 뜻도 성공하지 못했고 얼마후 망코잉카는 스스로 황제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 알마그로는 쿠스코를 점령하여 피라로의 통치권에 도전을 하게 되는데 리마의 피사로와 쿠스코이 알마그로는 협상에 실패하고 내전이 발생한다. 하여간 영원한 동지는 없는법인것 같다. 아니, 처음부터 동지가 아닌 각자의 생각이 달랐을뿐이라고 해야할까. 훗날 라스 살리나스 전투로 알려지게될 이 전투에서 알마그로는 참패했고 피사로의 동생인 에르난도에 의해서 처형된다.

 

- 망코잉카는 새로운 본거지 자유잉카의 수도 빌카밤바에 자리를 잡게 된다(쿠스코->비트코스->발카밤바).

 

- 망코잉카대신 왕에 오른 파우유는 망코잉카 제거에 협력하게 되는데 피사로의 동생인 곤살로가 망코잉카의 새로운 수도를 함락 하게된다.

 

- 알마그로가 죽은뒤 알마그로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결국 피사로를 살해하게 되는데 알마그로 지지자들은 망코잉카가 피사로의 암살을 도왔다고 그들을 보호햇으나 나중에 이들은 에스파냐의 새로운 총독에게 구원 받기 위해서 망코잉카를 살해하게 된다. 그 후 망코잉카가 반란을 시작한지 36년만에 잉카의 마지막 황제 투팍 아라루가 사형을 당하게 되면서 잉카는 완전히 몰락한다.

 

 

읽었던 책을 두서없이 요약해 놓은지가 너무 오래 되어 버렸다. 일단, 기록이니 남기긴 하지만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재정리를 해야할듯,,,

 

 

(한국시간으로 2월 5일)

 

 

# 다시 리마에 도착하다.

 

페루에 처음 발디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즉, 여행의 마무리 시점이다. 지난번엔 더운줄 모랐었는데 이번엔 더위를 느끼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덥다...

 

 

택시를 잡아타고 코엉아님이 가고자 했던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찾기 놀이를 하지 않아도 될만큼 가뿐하게 찾아들어 간 곳이다. 음, 도미토리로 6인용으로 기억되는데 높은 천장은 마음에 들었지만 방에 들어가는순간 꼬랑내가 말도 못하게 심하다. 완전 쓰러지는줄 알았다. 아, 페루의 마지막 숙소가 이런곳 이라니... 

 

 

제법 괜찮아 보였던 건물 외관과는 달리

 

 

꼬랑내 제대로 맡게 해주었던 숙소내부